debate_poster

제2회 SNU 토론 한마당 대회취지문

토론 주제: “진실을 거부할 수 있는가?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우리 학교의 교훈입니다. ‘진리’로 번역된 라틴어 ‘veritas’는 영어의 ‘truth’에 상응하는 단어로 우리말에서는 맥락에 따라 ‘참’으로도 ‘진실’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진리, 참, 또는 진실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는 점은 아마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진실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가치이며, 따라서 진실을 추구하는 행동은 다른 어떤 행동보다도 고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믿음은 꽤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알려진 영화 《트루먼 쇼》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이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트루먼 버뱅크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신뢰할 수 있는 친구, 좋은 이웃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트루먼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사실 그는 텔레비전의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트루먼 쇼>의 주인공입니다. 그의 삶은 출생 때부터 지금까지 수천 대의 몰래 카메라로 촬영되어 전 세계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트루먼이 살고 있는 곳은 거대한 돔 안에 구축된 세트이고, 그의 아내와 친구, 이웃을 비롯한 주민들 모두는 제작자의 지휘에 따라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들입니다. 우연한 사건들로 인해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 트루먼은 세트장을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하여 현실 세계로 나가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트루먼은 행복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세트장을 탈출하는 행동을 감행하였고, 우리 또한 영화를 보면서 그런 트루먼의 행동을 응원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그의 삶이 가짜였다는 사실, 그의 모든 경험과 기억과 믿음이 진실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 아닐까요? 그렇다면 진실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행복마저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요?

그러나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 생각해봅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을 실제 능력보다 더 우월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가령 한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학교수들의 90퍼센트 이상이 평균적 교수 수준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믿고 있고, 대학생들의 20퍼센트 이상이 자신의 대인 관계 능력을 상위 1퍼센트 내에 속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기과신”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믿음들은 분명히 진실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런 믿음들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우리 자신에 대해 진실을 추구하는 것만이 능사일까요? 그 결과 어떤 경우 견디기 힘든 자기 비하에 이르기까지 된다면, 과연 그 때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오히려 그러한 진실은 거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다음으로 타인과의 관계라는 차원에서 진실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철학자 칸트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심지어 그 거짓말이 자신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특히 칸트가 든 악명 높은 사례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살인자에게 쫓겨 당신의 집에 숨어 들었고 그 살인자가 당신에게 그 사람이 집에 있는지 여부를 물었을 때, 당신은 정직하게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칸트에 따르면 거짓말은 상대방이 자율적, 합리적으로 행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상대방의 이성을 당신의 목표 달성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례처럼 극단적인 경우, 칸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영화 《추격자》의 개미슈퍼 아줌마는 올바른 행동을 한 셈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상식에 따르면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바로 진실을 “거부”하고 “은폐”하는 것, 즉 살인자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이 집에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진실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우리의 시야를 자기 자신이나 타인과 같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차원으로 넓혀 봅시다. 이 경우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과연 공동체 전체의 이익, 즉 공익을 위해 진실을 거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가 존재할까요? 아니면 공동체의 공익이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수호하기 위해 진실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거나 위험한 발상일까요?

다음과 같은 가상의 사례를 생각해봅시다. 한 심리학자가 오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여성이 남성보다, 그리고 흑인이 다른 인종들보다 지능에서 분명히 열등하며, 그 주된 원인은 소득 수준이나 교육 여건과 같은 환경적 요소가 아니라 유전적 요소임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합시다. 남녀 간 성 차별과 인종 차별로 인한 극심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그 심리학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공표되었을 때 나타날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에 대해 깊이 우려하게 됩니다. 특히 그는 성차별주의자들과 인종주의자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빌미로 삼아 여성과 흑인을 부당하게 취급하고 탄압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 심리학자는, 결국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폐기해버리기로 결정합니다. 우리는 그의 이러한 결정을 과연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영화 《다크 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트맨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Sometimes…the truth isn’t good enough. Sometimes people deserve more. Sometimes people deserve to have their faith rewarded.” 여러분은 배트맨의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번 제2회 SNU 토론 한마당에서는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 토론 한마당을 통해 도대체 진실이란 무엇이고 그 가치와 의의는 어디에 있으며, 우리가 과연 진실을 거부할 수 있는지, 그럴 수 있다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와 근거에서 진실에 대한 거부가 용인될 수 있는지 다 같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