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Jenseits von Gut und Böse)257

– ‘인간’이라는 유형을 향상시키는 모든 일은 지금까지 귀족적인 사회의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그렇게 반복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위계질서나 가치 차이의 긴 단계를 믿어 왔고 어떤 의미에서 노예제도를 필요로 했다. 마치 혈육 화된 신분 차이에서, 지배 계급이 예속자나 도구를 끊임없이 바라다보고 내려다보는 데서, 그리고 복종과 명령, 억압과 거리의 끊임없는 연습에서 생겨나는 거리의 파토스(das Pathos der Distanz)가 없다면, 저 다른 더욱 신비한 파토스, 즉 영혼 자체의 내부에서 항상 새롭게 거리를 확대하고자 하는 욕구는 전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점점 더 높고 점점 드물고 좀 더 멀리 좀 더 폭넓게 포괄적이며 좀 더 광범위한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간단히 말해 ‘인간’이라는 유형의 향상이자, 도덕적 상투어를 초 도덕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지속적인 ‘인간의 자기 극복’에 다름 아닐 것이다. 물론 귀족적 사회의 (즉 ‘인간’이라는 유형을 향상시키는 조건의) 발생사에 대해서는 어떤 인도주의적 미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진리는 냉혹하다. 지금까지 모든 고도의 문화가 어떻게 지상에서 시작되었는지 가차 없이 말해보자! 여전히 자연적 본성을 지닌 인간, 언어가 가지고 있는 온갖 섬뜩한 의미에서의 야만인, 아직 불굴의 의지력과 권력욕을 소유하고 있는 약탈의 인간들이, 좀 더 약하고 예의바르고 좀 더 평화로운, 아마 장사를 하거나 가축을 사육하는 종족에, 또는 마지막 생명력이 정신과 퇴폐의 찬란한 불꽃 속에서 꺼져가고 있던 늙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문화에 습격했던 것이다. 고귀한 계층은 처음에는 항상 야만인 계층이었다. 그들의 우월함은 주로 물리적인 힘이 아닌, 정신적 힘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훨씬 완전한 인간이었다. (이는 모든 단계에서 ‘훨씬 완전한 야수’였음을 의미한다).


 

Friedrich H. Hayek, “The Meaning of Competition,” in Individualism and Economic Order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8), p. 97

– “In actual life the fact that our inadequate knowledge of the available commodities or services is made up for by our experience with the persons or firms supplying them — that competition is in a large measure competition for reputation or good will —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s which enables us to solve our daily problems. The function of competition is here precisely to teach us who will serve us well: which grocer or travel agency, which department store or hotel, which doctor or solicitor, we can expect to provide the most satisfactory solution for whatever particular personal problem we may have to face. Evidently in all these fields competition may be very intense, just because the services of the different persons or firms will never be exactly alike, and it will be owing to this competition that we are in a position to be served as well as we are.”


 

(번역) 프리드리히 H. 하이예크, “경쟁의 의미”, 개인주의와 경제 질서

실제 삶에서, 접근 가능한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우리의 불충분한 지식이 그것들을 공급하는 개인들이나 기업들과의 [접촉] 경험에 의해 보완된다는 사실 – 즉, 경쟁이란 상당 부분 명성 혹은 호감을 [얻기] 위한 경쟁이라는 사실 – 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일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들 중 하나이다.

어느 식료품점이나 여행사든, 어느 백화점이나 호텔이든, 어느 의사나 변호사든, 누가 우리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경쟁의 기능이다. 우리는 무슨 특정한 개인적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경쟁이 가장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명백히 이 모든 분야들에서, 그저 서로 다른 개인들이나 기업들의 서비스는 결코 완전히 동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경쟁은 매우 치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쟁 덕에, 우리는 우리가 제공받고 있는 것과 같이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로베르트 발저, 임홍배 역, 환상, 2017 (출간 준비중)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친절하다. 그곳 사람들은 서로 도와줄 수 있는지 묻는 걸 미풍양속으로 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그렇다고 서로 성가시게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사랑이 넘치지만, 그렇다고 호기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만, 그렇다고 괴롭히지는 않는다. 그곳에서는 불행한 사람도 오래도록 불행하지는 않으며, 스스로 유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으스대지 않는다. 생각이 살아 있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남들이 불쾌한 일을 겪어도 좋아하지 않으며, 남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볼썽사납게 기뻐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일체의 태도를 부끄러이 여긴다. 그들은 남이 피해 보는 것을 지켜보기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피해를 보고 만다. 그들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피해를 달가워하지 않는 한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다. 그곳에서는 만인이 서로 만사형통하기를 바란다. 그곳에서는 자기만 잘 되기를 바라거나 자기 처자식만 좋은 대접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곳 사람들은 남의 처자식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곳에서는 누군가 불행한 사람을 보면 자신의 행복도 깨졌다고 생각한다. 이웃사랑이 넘치는 그곳에서는 인류가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즉 그곳에는 모두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그곳에서는 질투와 시기심을 모르며, 복수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기지 않는다. 누군가 약점을 노출하더라도 그것을 약삭빠르게 이용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모두가 서로를 아름답게 배려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강하고 힘센 사람도 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비슷한 힘과 균등한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 사람들은 사리분별을 해치지 않는 우아한 상호관계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곳에서는 사랑이 가장 중요한 법칙이다. 그리고 우정이 최우선의 규칙이다. 빈자와 부자가 따로 없다. 건전한 사람들이 사는 그곳에서는 일찍이 왕이나 황제가 존재한 적도 없다. 그곳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지도 않고,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지도 않는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지배하지 않으며, 다만 누구나 자기 자신을 지배할 뿐이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모두에게 봉사하며, 세상의 의미는 고통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아무도 쾌락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 결과 모두가 쾌락을 즐긴다. 모두가 가난하게 살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가난하지 않다. 그곳은, 그곳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나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 스스로를 제어하기 때문에 서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더불어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 서로를 존중하는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싶다. 불안을 모르는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싶다. 물론 내가 환상을 꿈꾸고 있다는 건 나도 안다.


 

한병철, 김태환 옮김,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2012